책, 그리고 사람

<좋은글> 60년 사랑

소이야 2010. 10. 28. 08:08

제목 : [좋은글] 60년 사랑

        敵軍 장교와 60년 '못다한 사랑' 유럽이 울었다
 
 사랑이 아름다울수록 운명은 혹독한가. 60년  가까운 기다림 끝에
다가온 짧은 만남. 그리고 영원한  이별. 지난달 80세로 세상을 떠
난 한 그리스 할머니가 온 유럽인의 가슴을 적시고 있다.
 안젤리키 스트라티고우.  이 할머니는  '아모레 셈프레(영원한  사
랑)'라는 이탈리아어로 끝나는 두 통의 엽서를 가슴에 끌어안고 숨
을 거뒀다. 할머니가 숨지기 직전 몇 분동안 한 말은 "티 아스페토
콘 그란데 아모레(난 위대한 사랑을 안고 그대를 기다렸어요)."
 시간은 1941년 8월로  거슬러 올라간다. 20세의  이탈리아군 소위
루이지 수라체는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 서북부의 아름다운 항
구도시 파트라이로 파견된다. 행군을 하던 루이지는  집 앞에 앉아
있던 안겔리키 스트라티고우에게 길을 묻는다.
 처녀는 크고 검은 눈이 매력적이었다. 청년은 의젓하며 정이 많은
장교. 둘은 서로에게 마음이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. 그는 길을 가
르쳐준 처져가 굶주림에 지쳐 있음을  눈치채고 갖고 있던 전투식
량을 나눠줬다. 루이지는 사흘이 멀다 하고 먹을 것을 들고 그녀의
집을 찾았다. 루이지는 그리스 말을, 안겔리키는 이탈리아 말을 배
웠다.
 짧았던 행복. 그러나 이 행복은 43년 이탈리아가 항복하면서 끝난
다. 급거 귀국해야 했던 루이지는 안겔리키를 찾아 손을  한 번 잡
게 해달라고 간청했다. 하지만 적군 장교와 사귀는 것을 다른 사람
이 볼까 두려워한  그녀는 끝내  거절했다. 대신 떨리는  목소리는
"전쟁이 끝나면 결혼해 달라"  는 루이지의 청혼에 조용히  고개를
끄덕였다.
 전쟁이 끝난 후 루이지는 고향인 이탈리아 남부 렉지오 칼라브리
아로 돌아갔다. 그곳에서 루이지는 안겔리키에게 계속 편지를 띄웠
다. 당시 그녀는 고모집에 살고  있었다. 하지만 조카가 적군과 연
애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던 고모는  편지를 중간에 가로채 없애
버렸다. 메아리 없는 편지를 계속 보내던 루이지는 천일째 되던 날
드디어 그녀를 잊기로 결심했다.
 루이지는 곧 결혼을 했다. 아들  하나를 둔 평범한 삶이  계속 됐
다. 그러나 부인이 96년 세상을 떠나자 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
그의 가슴 속에서  되살아났다. 그는 파트라이의  시장에게 사연을
담은 편지를 냈고, 시장은 현지 스카이 방송사 기자들의 도움을 얻
어 아직도 그 도시에 살고 있던 안겔리키를 찾아냈다.
 "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  줄 알았어요." 소식을  들은 안겔리키의
첫 마디였다. 안겔리키의 연락을 받은 루이지는  얼굴을 가리고 한
없이 울었다. 그녀가 60년 가까운 옛날의 결혼 약속을 여전히 믿으
며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 왔음을 알았기 때문이다.
 지난해 2월의 성밸런타인데이에 둘의 감격어린  재회가 이뤄졌다.
파트라이를 방문한 루이지는 또다시 떨리는 목소리로 청혼했고 안
겔리키는 벅찬 가슴으로  받아들였다. 루이지는  77세, 안겔리키는
79세였다.
 1년의 절반씩을 각각 그리스와 이탈리아에서 지내기로 한 루이지
와 안겔리키의 달콤한 계획은 안겔리키가  앓아누운 끝에 훌쩍 하
늘나라로 떠나면서 꿈이 돼버렸다. 사망일은  1월 23일로 예정됐던
결혼식을 2주일 앞둔 9일이었다.
 루이지는 아직도 그녀의 죽음을 모르고 있다. 그  자신이 몸이 아
파 병원에 입원했고, 주변에서 비밀로 하고 있기 ㄸ문이다. 결혼식
도 연기된 것으로 안다.  지금도 그는 매주 토요일  아침이면 펜을
들어 '영원한 사랑'으로 끝나는 엽서를 쓴다. 엽서는 그녀의 무덤앞
에 쌓이고 있다.

         ─ 중앙일보 99년 2월 5일자 10(국제)면, 채인택 기자